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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2/02 과학철학에 대하여 [첫번째 시간](1)
캔디 brightazure@hanmail.net
과학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과학’의 절대성에 대해 별로 의심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학은 매우 객관적이며 탈정치적인 것이라는 관념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20세기 과학철학자들은 이런 ‘과학’의 절대성에 대해 의심했고, 과학의 사회성과 정치성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논의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초기 과학철학은 ‘과학’이 다른 학문과는 차별적인 대상, 방법론을 가진다고 전제한다. 이 시기 과학철학은 명제의 논리적 배치로, 다시 말해 수학-과학(넓은 의미의 물리)적 방법으로 세상을 서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논리실증주의에서 출발한다. 오로지 검증 가능하고 분석적인 명제만이 가치 있다고 했을 때, 새로운 명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그대로 정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떠한 원칙으로 새로운 명제를 수용할 것인가, 어떻게 수용해야 그동안 쌓아놓은 세계에 대한 논리적 구성의 체계가 무너지지 않을 것인지는 논리실증주의에서 중요한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이에 포퍼는 이들이 제시한 방법론에 대해 ‘반증주의’를 제시한다. 포퍼의 반증주의는 무엇을 과학으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 과학이 세상을 설명하는 도구이자 학문이라는 점에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과학‘철학’은 철학과 분리된 ‘과학’이 세상을 서술하는데 중심적인 지위를 가지지만, 그 ‘과학’에 대한 정의가 논리적 엄밀함을 결여했기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다.
포퍼의 반증주의는, 포퍼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반증을 거쳐 새로운 이론이 도출될 때마다 더욱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강하게 보여준다. 이는 특정한 방법을 통해 세계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고가 표현되는 것이다. 세계의 본질에 도달하려는 시도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다. 역사에 어떠한 도달점과 시작이 있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의 반영이다. 포퍼가 과학을 세상에 대한 절대적인 잣대로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과학의 진보를 확신했다는 평가를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듯 과학에 특별한 방법론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달리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론은 과학의 역사가 그렇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과정을 거쳐 온 것이 아님을 풍부하게 보여주면서, 쿤 역시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다지만, ‘과학’에 부여된 권력을 흔드는 역할을 했다. 그는 과학자들이 이론을 등에 업고 관찰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론 중립적이어서 분쟁의 심판 역할을 한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거부한 것으로 이 주장에 따르면 과학의 객관성은 물론이거니와 합리성도 보장하지 못한다. 쿤에 따르면 과학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데 넓은 의미로는 주어진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이며 좁은 의미로는 그 집합의 한 구성 요소로서 구체적이고 인상적인 문제 해결의 사례에 해당하는 ‘범례(과학공동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론의 매우 성공적인 적용 사례)’라고 설명한다.
쿤
쿤은 과학혁명을 통해 패러다임이 바뀌면 세계관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전체가 바뀐다’고까지 주장한다. 세계란 우리가 ‘패러다임을 통해 인식하는 그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유는 우리에게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안한다. 결국 쿤의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제기되는 문제들을 얼마나 잘 해결했느냐이지, 그것이 우주의 근본 원리와 얼마나 가깝느냐가 아니다. 그러나 쿤은 과학이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진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면, ‘왜 [과학]을 해야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과학이란 ~하는 것이다’는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런 쿤의 입장을 현재 과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므로 보수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본질과 기원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 않으려했던 태도로 바라볼 수 있다.
점이 어느면에 있습니까? 쿤에 따르면 당신이 보는 방식에 따라 세계가 결정된다.
라카토시는 과학의 명제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묶음으로(핵+보호대)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며 과학활동이 개별 명제 하나하나에 대한 증명과 분석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한다. 뒤이어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이 다른 학문과 구분되는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모든 방법론이 과학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에 자신을 특수하게 규정할 수 있는 논리적 언술이 부재하다면, 과학이 그런 언술의 존재여부를 기준으로 자신과 구분지으려 했던 다른 학문들과의 경계가 사실상 무의미 하게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과학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과학사회학은 왜 현대사회에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인식이 구성되는지를 탐구했다. 우리가 현재 과학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해석될 수 없는 변칙사례들을 제외하고는 세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설명이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일지는 알 수 없다. 그 변칙사례들이 제기되는 것은 사회적인 맥락과 닿아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현재의 과학체계가 유지되는 것은 과학 바깥의 사회와 떨어트려 생각할 수 없다.
과학이 어떤 식으로 정립되는가에 대한 논쟁에 대해, 왜 다른 것이 아닌 ‘과학’의 방법론에 대해 논쟁을 하는 가에 대해 물음을 던져보자. 초기 알튀세르는 철학과 과학을 구분하고, 철학에는 대상이 없다고 이야기 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으로 정초하고자 한다.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과학’의 특수한 대상과 방법론이 있고 마르크스주의가 그것에 부합하기 때문에 과학으로 언명한다고 하더라도, 그 언명은 사회적-정치적인 맥락에서 존재한다. ‘과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쓰이고 평가 되는가, 즉 어떠한 힘을 가지는가를 살피면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구성해볼 수 있게 된다. 과학사회학은 이런 관점에서 과학을 바라본다. 과학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술적인 방법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여러 요건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과제는 우리가 과학철학의 논쟁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먼저 선험적으로 과학이라는 학문이 객관적인 진리를 탐구하고 축적하는 체계라고 판단하는 것을 경계할 수 있다. 이는 어떤 특정학문에 절대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으로 넓혀질 수 있다. 그리고 과학이 설사 내부적인 공리와 증명 체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공리 자체가 사회적인 인식들 속에서 구성되는 것인 만큼, 다른 학문 역시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 속에서 접근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즉,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 ‘과학’에 딴지를 거는 태도 자체를 배울 수 있겠다.
::과학철학에 대한 개괄서
현대의 과학철학_A.F 차머스_서광사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_장대익_김영사
::과학철학자들의 원저
과학혁명의 구조_토마스 쿤_까치글방
방법에의 도전_파이어아벤트_한겨레 (절판되었다.)
::과학철학 내 논쟁과 비판
지적사기_앨론 소칼_민음사
쿤/포퍼 논쟁_스티브 풀러_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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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단소리] 2008/12/07 01:16
존경하는 귀빈님!
조매화 동백꽃이 피는 아름다운 동절입니다! 두 다리가 건질 거리는 스키의 계절이기도 하지요! 춥지만 귀빈님의 아름다운 삶에 신선한 평온의 향기를 보내 드립니다! 블로그는 자신의 글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퍼주는 인심과 퍼가는 정성'이 합쳐서 신문도 TV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블로그를 만들어 간다는 아름다운 사실입니다! 소인의 블로그로 오시면 조촐하지만 아름다운 지혜들을 글속에 담아 모두 분양해 드리고 있습니다. 진정 마음으로 우러나는 좋은 댓글들이 서로 오고 가는 아름다운 ‘블로그-문화’가 성숙하도록 진심으로 다 함께 노력하고 또 노력합시다!^^참신하고 아름다운 생각의 교류를 통해서 보람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블로그의 참뜻이 아니겠습니까? 지금부터 다 같이 그윽한 블로그의 향기와 진미를 음미하도록 성실성을 아끼지 않기로 해봅시다!^^ 소인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들을 정독하시다 보면, 앞으로 귀빈님의 인생여정에 양식이 되고 힘이 되는 그 무엇을 찾으실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안방처럼 자주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매서운 북서풍에도 감기조심하시고 아주 행복하세요! 연공무정 박춘근{^_^}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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