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되찾기 위한 연대
일제고사가 또 치러졌다.
작년 일제고사가 치러지고 나서 지역별로 학업성취도가 공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북 임실에서 성적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정치인과 언론들은 몇몇 사람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일제고사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런데 이번 3월 31일 일제고사에서는 1~50등까지 상품을 주겠다거나, 일제고사 성적을 수행평가에 반영하겠다는 학교까지 나왔다. 31일 시험이 치러지고 나서는 일부 학교에서 미리 시험문제 및 듣기파일이 유출되었다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진단하겠다는 일제고사가 학생들의 순위를 평가하는 시험으로 변질된 것이 몇몇 학교장의 그릇된 생각 때문일까? 일제고사는 이미 대학생이 되고, 취업한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일까?
우리 사회에는 학벌이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학벌이 형성되는 것은 교육이 단지 '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 이외의 다른 떡밥들-취업, 돈, 출세 등- 때문이라는 것을 지난 번 글에서 이야기 했었다. 이런 사회에서 시험성적을 매기는 것은 그 사람의 이해정도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비교 가운데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교육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에 어떠한 떡밥도 없어야 하고, 교육 그 자체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하며, 시험은 점수를 공개해 순위를 매기지 않고, Pass/False 로만 성취도를 평가하는 도구여야 한다고도 제안했었다. 하지만 이런 요구가 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은 교육에 뭔가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일제고사에는 5800여명이 '오답'선언을 했다. 만약 더 많은 사람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한다면, 이 승자 없는 경쟁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당신의 힘이 필요하다!
이미 서울대 입학생의 반절 이상이 서울 강남출신이다. 올해 초 고려대학교에서는 실질적인 고교등급제를 시행해 특목고 학생들이 쉽게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서 논란이 되었었다. 이미 지금도 해마다 입시가 마무리되면 각 고등학교에는 서울대 합격자가 몇 명인지 현수막을 걸어놓고, 그것이 학교의 서열을 매기는 암묵적인 기준이 된다. 여기에 일제고사가 더해져, 매우 '객관적인 점수'로 각 고등학교의 순위가 매겨진다면, 그 서열을 바탕으로 대학차원에서 고교등급제를 시행하는 시나리오는 이미 현실 같지 않은가? 자신의 미래를 얻기 위해서는 더욱 우수한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고, 입시경쟁은 초등학교·중학교에서도 당연하게 될 것이다.(그런데... 이미 그런 것 같다. OTL)
일제고사는 이런 경쟁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이고, 이런 제도 안에서 학생들은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들을 외우며 삶을 낭비해야 한다. 세상은 갈수록 온갖 상품들로 넘쳐나는데, 그것을 누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삶의 시간들은 더 늘어간다. 인생에서 일하는 시간보다 일을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시간이 더 커지는 역설적인 세상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 수행되는 평가는 대개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노동을 해야만 임금이 주어지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제'는 일할 수 없음을, 그래서 먹고 살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 사회를 통찰했던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는가. '자유가 있다. 굶어죽을 자유가.' 자신이 배제되는 편에 속하지 않으려는 경쟁은 정글의 목숨을 건 경쟁, '생존경쟁'이다. 이미 우리는 언제 삶의 저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중고등학교를 보내고, 대학에서는 취업을 위한 경쟁에 목매단다.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삶이 의미 없이 지불되는 것도 견뎌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험에서는 모두가 서로 더 높은 성적을 바라고, 이를 위해 많은 수단을 강구한다.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하는데, 그 수단에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무리 그 경쟁이 싫다 해도, 나 '혼자서' 대열에 합류하지 않으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경쟁의 최하위에 위치하게 되어 사회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사회가 이 경쟁을 주도한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 경쟁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쟁은 중고등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전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제고사 시행은 필경 지금 대학생인 사람들, 이미 취직한 사람들, 혹은 취업대기자들 모두를 더욱더 각박하게 만든다.
그리고 학교는 사회가 원래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체념시킨다. 교육에 대한 아무리 훌륭한 대안을 제출하더라도 그것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은 교육이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 이 경쟁에 편입하는 것 외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을까? 아니다. 있다.
3월 31일,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체험현장활동을 떠났고, 58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오답'을 제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작년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대신 체험현장활동을 다녀오게 한 교사들이 12명 해임 파면되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이번 일제고사에서는 145명의 교사들이 불복종 선언을 했다. 일제고사 반대운동이 고양되는 것은 일제고사가 학생들의 삶을 어떻게 옥죄게 될지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옥죄어지는 삶 안에 우리의 삶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일제고사에 맞서는 사람들의 싸움에 동참하여 다 같이 경쟁을 거부하는 것, 그래서 이 사회를 바꾸어내는 것. 그것만이 진정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이다. 눈앞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짧은 순간의 만족감을 줄지 모르지만 그 경쟁에 편입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자신의 삶을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곳에 쏟아부어야 할 뿐이다. 일제고사에 불복종한 교사들에게 지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저들에게 불이익이 생겼을 때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적극적으로 항의하자. 혼자 꿈꾸면 꿈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꿈꾸면 현실이 된다.
연세대는 인상시킨 등록금으로 금융투자를 위해 펀드를 만들었습니다. 최근 금융위기에 따라 손해가 발생 했을 텐데 손실액을 어디에서 메울까요? 다시 등록금 인상으로 메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대학에서 발생하는 일이 아닙니다. 정부는 국민연금으로 주가폭락에 따른 금융자본의 손해를 보충해주고 있습니다. 금융경제위기를 바로 우리 대학인들과 시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죠. 이렇듯 대학의 문제들은 우리 모두의 삶의 문제들과 닿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절박한 삶을 바꾸는 것은 사회 변혁적 활동 속에서만이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권의정치 학생연합(이하 인학연)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학생단체입니다. 인학연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 등록금인상과 대학구조의 문제, 취업, 환경파괴등의 문제들이 개인․개별의 문제가 아닌 신자유주의,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인식하며, 이에 저항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 전북지역에서 활동해왔습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남한의 정부와 자본은 70년대 이후 심화되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를 비정규직의 광범위한 확산, 공공영역 사유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 등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동시에 신자유주의 위기에 맞서는 저항운동들에 대해 전 사회적인 탄압을 가속화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남한만이 아니라 세계 각 국에서 전면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광범위하게 전 사회를 재편하는 동안 자본에 의한 교육의 시장화가 확대되면서 대학은 사회에 대한 교육비 전가와 함께 교육 내용 자체를 자본에 예속되는 형태로 재편돼왔습니다. 이것은 등록금의 폭발적인 인상과 함께 기업이 부담하던 재교육과정을 대학에 떠넘기며 갖가지 학생인증제도 등을 도입시키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는 어용 학생회, 학생 공간 및 예산 감축 등의 학생 자치활동에 대한 탄압과 맞물리며 대학인들의 저항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항하여 인학연도 지난 기간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실천 활동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인학연의 활동이 관성화 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 대학은 기업의 입맛대로 재편되었으며 새로운 주체들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우리들은 관성화한 활동과 정체된 내용생산과 단절하고자 합니다. 또한 전 사회적 변혁운동에 대한 반성적 고찰 없이는 우리의 문제와 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에 전체 변혁운동의 관점에서 우리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평가하고 다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올해 하반기 총회에서 사회 변혁적 가치와 관점에 대해 동의하는 대학인들의 모임으로 인학연을 재규정하고 이전의 활동의 관성․정체와 단절하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과 실천을 만들기 위한 “조직재편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1.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변혁운동 조직이고자 한다.
2. 우리의 이론과 활동의 모습은 이전 인학연의 모습과 상이할 수 있다.
3.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선명하게 확인하고 드러내려는 노력을 통해 입장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이러한 전제아래에 활동을 시작한 재편위는 우리의 전망과 입장에 대해 명확히 하면서, 최소한의 실천으로서 ‘Com-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재편위의 온라인․오프라인 매체 ‘Com-인’은 공동체를 뜻하는 Commune, 사람 인(人)을 뜻하며 이는 반자본적 공동체인(Commune 人)으로 거듭나려는 재편위원회의 지향을 말합니다. 동시에 'Com-인(in)'은 'Commune in our society'를 말하며 어느 다른 곳, 공상의 사회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발딛고 있는 사회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을 뜻합니다. 그리고 변혁적 가치, 저항의 꿈틀거림을 갖고 있는 바로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Come in~!!)
인권의정치 학생연합(이하 인학연) 재편위원회(이하 재편위)에서는 활동가들의 자기정체성의 부재가 활동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음을 느끼고 현장투쟁과 동시에 이론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이론 학습은 원전을 중심으로 독해하고 있고, 이 지면은 그 결과를 실은 것이다.
::왜 이론학습인가?
우리는 현재까지 학습을 해왔다. 다만, 이론과 실천을 분리시키는 관념 속에서 급박한 정세에 대해 이론보다는 실천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우리 안에 팽배했다. 이는 매번 학습은 미뤄도 일정은 참가한다는 양태로 활동공간속에서 드러났다. 한편으로 자본은 우리의 삶을 더욱 세련되게 포섭해나가고 있었고, 활동가들은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도 버거워졌다. 이렇게 인학연은 10년이 흘렀다. 그렇다면 98년 인학연 출범이후 우리의 문제의식은 얼마만큼 달라졌는가? 거기에 대해 우리는 현재의 분석을 통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의 우리 중 누구도 이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
누군가는 철탑에 오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세상을 끝장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가야하는 것일까에 대해서 최대한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이론학습은 그중에 우리가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는 역사의 흐름과 나눠져 홀로 가는 고독한 배가 아니다. 때문에 그 역사의 흐름, 그 중에서도 먼저 철학의 흐름들을 짚어보며 우리는 온몸으로 다시 질문하고자 한다.
::철학하기=의심하기?
철학은 단지 생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연관되어 특정한 삶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어떤 사회에서 지배적인 사고방식에 문제제기 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삶의 형태에 문제제기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즉, 철학하기란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형태, 사고의 근거, 생활에 근거를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미 의심해보며 기존사회에 파열구를 내려했던 사람들을 살펴봄으로서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또 다른 삶의 형태를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연재 계획
스피노자, 경험주의,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소쉬르, 비트겐슈타인, 이데올로기론, 푸코, 들뢰즈·가따리, 네그리를 비판적으로 살피고 정리한 결과를 실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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